2005-06 시즌 1라운드 1순위로천안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 프로 데뷔 이후 한국에서의 네 시즌 동안 정규리그 우승 3회, 챔피언 결정전 우승 3회, 통합우승 2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국내 V-리그를 평정한 후 프로 출범 이후 남녀선수 통틀어 최초로 해외리그 진출을 타진했다.
일본 프리미어리그의JT 마블러스에서 두 시즌을 뛰며 팀 창단 이래 최초로 우승을 달성한 후, 2011년 제 호베르투(José Roberto Guimarães)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터키 아로마 리그의 명문 구단페네르바흐체 SK와 계약에 성공했다. 유럽에선 통하지 않을거라는 예상을 뒤엎고[20][21]유럽 진출 첫 시즌만에 팀의 창단 후 첫챔피언스 리그우승으로 이끌었고, 본인은 MVP와 득점왕을 수상했다.페네르바흐체에서 여섯 시즌 동안 팀의 간판스타이자 절대적인 에이스로 활약하며 큰 임팩트를 남겼다.
2017-18 시즌,중국 슈퍼 리그의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로 이적했고, 팀을 17년만의 정규리그 1위와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으로 견인했다. 2018-19 시즌 다시터키 리그로 돌아가엑자시바시로 이적했다. 2019-20 시즌, 팀에서의 비중과 리더십을 인정 받아 동양인 선수로는 이례적으로 주장을 맡게 되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본선에서 8경기 동안 207득점 (한 경기 평균 25.9점)이라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는[22]어마어마한 퍼포먼스로대한민국 대표팀의 최종 순위가 4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MVP로 선정되었다.[23]
프로 데뷔 이후 현재까지 무릎 수술을(왼쪽 한번, 오른쪽 두 번) 총 세번이나 받았다. 흥국생명 시절,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비시즌마다 수술대에 올랐다.[24]또한런던 올림픽브라질과의 경기에서연골판이 파열됐으나수술을 하지 않고 재활로만 버텼다. 수술을 한번만 해도 몸 상태를 예전으로 되돌리기 어려워 은퇴하는 선수들이 많은데 10년이 넘는 소속팀과 국가대표에서의 혹사에도 불구하고 참가하는 대회마다 득점과 공격 1위를 밥 먹듯이 하는 김연경은 가히 대단하다 볼 수 있다.
2019년 12월 중국에서 열린 FIVB 월드클럽챔피언십에서 베스트 아웃사이드 스파이커에 선정되면서, 소속 리그의 전 클럽 대회 수상이라는 기록을 달성함과 동시에 여전히 월드클래스 레벨의 선수라는 것을 입증하였다.
동양인으로서 이례적으로 유럽 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2012년부터는 자타공인 세계적인 선수로 올라섰다. 또한 화려했던 1990년대를 뒤로 한 채 침체기에 들어섰던 한국 여자배구를 다시 인기 스포츠로 일어서게 한 장본인이다. 뛰어난 실력에 비해 그에 걸맞은 국제대회 커리어를 쌓지 못한 안타까운 케이스지만 이러한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많은 감독, 선수, 그리고 언론으로부터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 이미리빙 레전드로 인정을 받고 있다.
김연경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는 여자배구계 최고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평가되는 페르하트 아크바쉬(Ferhat Akbaş)[25]가 자신의 베스트 7에 김연경을 뽑았는데, 이 라인업 중 김연경만이 유일하게 아크바쉬 코치와 같은 팀에서 뛴 경험이 없다.[26]또한 김연경을 직접 지도해본적 없는 명장랑핑과지오바니 구이데띠가 김연경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김연경이 배구계 관계자들에게 얼마나 인정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랑핑은 "유럽 선수들에 비해 신체적으로 약한 아시아 선수임에도 터키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고, 그녀가 얼마나 뛰어난 선수인지 입증한다"며 아시안 공격수가 유럽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고[27], 구이데띠는 좋은 피지컬[28], 아시아의 기본기와 유럽/남미의 공격력을 다 갖춘 김연경을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여러번 극찬했던걸로 유명하다.[29]
힘차게 뛰어올라 강한 스파이크 공격을 하거나, 득점한 후 양팔을 활짝 벌리거나 주먹을 치켜올리며 포효하는 김연경의 모습은 ‘파이팅’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할 정도다. 심지어 점수를 뺏긴 순간 욕설을 하는 입 모양이 카메라에 잡혔을 때조차 “착한 식빵 인정합니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올림픽 기간 동안 주목받았던 각 종목의 선수들 중에서, 김연경은 지금 가장 독특한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프로에 데뷔한 이래 10년이 넘도록 정상을 지킨 김연경이지만, 배구라는 마이너 종목의 한계[31]때문에 2012 런던 올림픽 4강 진출에 성공하기전까진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2016 리우 올림픽 한일전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인지도와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뛰어난 실력에서 나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화끈하고 시원시원한 성격, 코트 위에서 보여주는 승부욕, 그리고 화끈한 세러모니 등 이 모든게 맞아 떨어져 김연경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고 볼 수 있다. 덕분에 일명'배알못'까지 사로잡으며 배구의 인기를 끌어올린것도 당연지사.
월드클래스 배구 선수로서의 실력 뿐만 아니라 스타성 또한 높게 평가 받고 있으며, 한국 내에서 국제대회가 열릴때마다 홍보로 쓰이는건 물론, 종종국제배구연맹측에서도 공식 SNS상에서 올라올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에선 많은 배구계 관계자들에게 대표팀의 성적뿐만 아니라, 여자배구 종목 그 자체의 인기도캐리했다는 인정을 받고 있고, 많은 지표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32]"농구의 김연경"이라고 불리는박지수도[33]제자리걸음 중인 농구 인기에 비해 급성장한 배구 인기에 부럽다며, "여자배구는 2012년 런던올림픽 4위 등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국제대회 성적이 인기몰이에 중요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배구계 안밖의 스포츠인들에게인정 받고 있다는 뜻.
한국 여자배구는 2005년 프로배구 출범 당시만 해도 남자부 대결에 앞서 열리는 ‘오프닝 경기’쯤으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불과 10년 만에 여자배구가 남자배구는 물론 ‘겨울 스포츠의 제왕’ 남자농구의 지위까지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여자배구가 전례 없는 인기를 누리는 데는 ‘배구계의 호날두’라 불리는 김연경의 힘이 컸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2017년 실시한 '올해의 인물‘ 설문조사에서스포츠 선수 중 올해의 인물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또한 한국대학신문에서 발표한 통계에선 대학생이 선호하는 운동선수 3위에 오르며 젊은 층에 크게 어필하는스포츠 스타임을 보여주었다.
또한스포츠동아가 2018년 3월 24일 창간 1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체육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국 스포츠 파워피플을 꼽는 설문조사에 따르면, 배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뽑힌 이는 김연경이었다. 각 종목 파워피플 가운데 현역 선수로는 김연경이 유일하게 1위를 차지했다. 그 뿐만 아니라배구계 최고 인기스타와 레전드 부문까지 휩쓸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었다.2020년 2연속 1위로 올랐으며 전 종목 중최고 득표율을 자랑했다.
2016년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배구협회의 선수위원회 멤버로 발탁되었다. FIVB는 선수위원회가 연맹과 선수간 가교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연맹 의사결정에 선수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전했다.
선수위원회는 배구와 비치발리볼 국가를 통틀어 9개국 10명의 선수로 구성됐으며, 모든 멤버들이 하나같이 배구계의 레전드적인 인물들이다. 초대 위원장으로는 브라질 남자배구 영웅인 지우베르투 "지바" 고도이 필류가 위촉됐다.[36]김연경 외에 위원으로 발탁된 현역 선수는 폴란드 슈퍼스타인 바르토즈 쿠렉과 미국 비치발리볼 선수인 케리 월시-제닝스, 이탈리아의 엘레노라 로비앙코 등이 있다. 이 라인업에 포함됨으로써FIVB 선수위원회 선정은 김연경이 국제 배구계에서 가지는 위상을 입증한 셈이다.
2017년 1월 30일스위스로잔에서 열린 선수위원회의 첫 회의에 김연경을 비롯해 FIVB 아리 그라차 회장, 지바 선수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2005-06 시즌 1라운드 1순위로천안 흥국생명에 입단 한 이후 1년차 연봉은 5000만원이였다.[37]#
두 시즌 연속으로 팀의 통합우승에 기여하며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싹쓸이 한 후 2007-08 시즌 연봉은 9400만원이였다.[38][39]#2008-09 시즌 연봉은 1억 2천만원이였으며, 시즌 종료 후 해외진출 팀을 물색할 당시 이보다 훨씬 높은 연봉이 구단이 내세운 우선조건이였다고 한다.#
흥국생명 임대 신분으로 일본JT 마블러스와 1년간 계약하게 된 2009-10 시즌, 팀의 요청에 따라정확한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으나30만달러(약 3억 7천만원) 이상, 거의4억원가량의 연봉을 받는것으로 알려졌고, 이 중 약 3만달러 정도를 '김연경 장학금'에 쓰기도 했다. 참고로 4억원의 연봉은 2009년 당시V-리그남자부와 여자부를 통틀어 최고 연봉이다.#
2011년페네르바흐체의 러브콜을 받고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 김연경은 세후 40만 유로(6억 2천만원)에 각종 인센티브와 주택, 차량, 통역 등이 제공되고 첫 시즌 종료 후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옵션도 포함된 파격적인 대우를 받게 되었다.#[40]팀이 창단 이후 첫CEV 챔피언스 리그우승을 이뤄내고 본인은 MVP에 선정되며 세계 최고 선수의 반열에 올른 김연경은 페네르바흐체와의 재계약은 물론이고 전 시즌보다 대폭 상승한 연봉 15억원에 2년 계약하였다.[41]#또한 런던 올림픽 도중 올라온 외국의 스포츠 일간지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김연경은당시 세계여자배구 선수 연봉 중 최고금액인[42]약 100만달러(un millón de dolares)를 받는다고 적혔기 때문에 정확한 금액은 불확실하다.#
계약 기간이 끝난 후이적 파동당시 적극적으로 도와준 페네르바흐체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2년 연장 계약을 하였다. 이때의 연봉은 불확실하다. 2016-17 시즌 1년을 추가로 재계약하였고 이때의 연봉은전세계 남녀배구 선수 중 최고금액인 120만유로이다.#전보다 올라간 금액이긴 하나, 그 동안의 유로화 폭락으로 인해 연봉은 그대로인 듯한 느낌이 드는건 기분탓이다...또 다른 기사에 따르면 한화로 대략 16~17억원이라는 말도 있다.#
터키에서 여섯시즌 이후 상하이와 1년 계약하였는데, 2016-17 시즌 페네르바흐체와 계약한 수준보다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수준이라고 전해졌다.#2020년 기사에 따르면세전 20억정도라고 한다.
상하이와 한 시즌이 끝난 후 2017년 터키의엑자시바시 비트라와 2년계약에 성공했는데, 연봉은 여전히 세계선수들 중 최고 수준에 속하는 130만유로(약 17억원)으로 추정된다.#또한 구단측에서 이스탄불 중심지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를 제공하기도 했다. -직접 본인의 정보를 확인하던 김연경이 자신의 연봉 정보를 보고 "이것 밖에 안될까? 잘 생각해봐"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아 130만 유로는 실 연봉에 비해 매우 낮게 책정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영상)
2020-21 시즌에 친정팀 흥국생명으로 복귀하게 되었는데, 계약 규모는 3억5천만원으로 이전 팀 연봉에서 무려 80% 가까이 줄어들은 금액이다. 본인은 후배를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전했다. 자세한 건김연경 흥국생명 복귀 논란참조.
2009년, 흥국생명 임대 신분으로 일본으로 진출한 후, 김연경은태광그룹산하의일주학술문화재단과 함께 가정 형편이 어려운 배구 꿈나무 6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이는 국내 남녀 배구 선수를 통틀어 최초이다.(기사) 배구에 대한 열정과 자질은 많지만 어려운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힘겹게 운동을 하고 있는 배구 꿈나무 6명을 매년 선발해 매달 2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계획으로, 2011년 3기까지 진행되었다.[43][44]
김연경은 3녀 중 막내로 원래는 큰언니가 배구 선수였다. 그런데 큰언니와 친분이 깊은 김연경은 큰언니가 운동을 하러 갈 때마다 졸졸 따라다니면서 구경하다가 결국 배구를 시작했다. 황당한 것은 정작 큰언니는 중간에 배구를 그만둔 반면 언니 따라 배구를 배운 막내 김연경은 세계적인 배구 선수가 되었다.[46]이러한 점 때문에 김연경은 어릴때 고등학교 선배인한유미-한송이자매를 무척 부러워했다.[47]
이름의 영어 표기법이YEON KOUNG이다. 이 때문에 외국의 중계진들은 김연경을 킴, 킴연콩, 또는 킴연쿵이라고 부른다. 다만 유니폼에는 Y.K.KIM 이라 표기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터키 한정야키(YAKI)라는 별명을 얻기도. 특이한 영문명에 대해대한배구협회관계자는 "2004년 김연경이 처음 배구협회에 여권을 제출할 때부터 영문명이 그렇게 돼 있었다. 왜 영문명이 'Koung'이냐고 물어보니 김연경이 그렇게 정했다고 해 더이상 이유는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불 같은 성격과 승부욕 탓에식빵을 서슴없이 굽는 등욕을 잘하는 편이고, 화법도 직설적이다.[49][50]또한 해외에서 열리는 시상식마다 태극기를 어깨에 두르고, 터키리그에서 출전할때 팔토시에 태극기를 새겨 넣고 경기를 뛸 정도로 애국심이 강하다.